구역공과




[2023-09-10]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 고린도전서 11:2-6

신앙고백 / 다같이

찬송 / 286장 / 다같이

기도 / 회원중

성경봉독 / 고린도전서 11:2-6/ 다같이

말씀나눔 /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 인도자

 

 

오늘부터 우리가 은혜를 나누게 될 말씀은 예배와 관계된 말씀입니다. 11:2절부터 시작해서 14:40절 까지 아주 긴 말씀을 통해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하나님께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옳은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주로 중요한 것 세 가지를 다루고 있는데 첫 번째 오늘 우리가 은혜를 나누는 2-16절까지는 예배를 드리는 사람의 태도와 모습 관계된 것이고 17-30 절까지는 성만찬에 대한 것, 그리고 12:1-14:40 절까지는 성령에 대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우리가 오해하기 쉬운 말씀들이 있는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도 그중에 하나라고 할 수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읽을 때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니라라는 말씀 때문에 흔히 여자는 남자보다 열등한 존재 혹은 아래에 있는 존재로 생각해서 여자는 교회에서 남자의 지도를 따라야 하는 것으로 이해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결코 그런 뜻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의 태도와 모습에 대해서 교훈을 주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바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의 복장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까 여자들이 교인들 앞에 나서서 대표로 기도를 하거나 말씀을 전할 때 너울을 쓰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는 너울을 쓰는 것에 대한 규정이나 가르침은 없습니다. 이것은 단지 그 당시의 사회적인 관습에 해당 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살고 있던 로마시대에는 종교와 관계없이 교양이 있고 정숙한 여자라면 너울로 머리를 가리고 다녔습니다. 머리를 감추고 다니지 않으면 여자가 남자를 유혹한다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머리를 감추지 않고 다니는 여자는 그 행실이 정결하지 않거나 상스러운 여자로 간주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예배를 드릴 때 여자들이 너울로 머리를 가려야 한다고 말씀을 하신 적은 없지만 너울로 머리를 가리지 않을 때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이 머리를 가리지 않은 여자들을 보고 정숙하지 못하다고 느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불신자들이 이러한 것을 보게 될 때 교회에 다니는 여자들은 정숙하지 못하다고 생각을 할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 바울은 예배를 드릴 때에 여자들은 너울을 쓰는 것이 좋다고 말을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도 주일을 맞아서 많은 분들이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주일에 하나님께 와서 예배를 드릴 때 어떤 옷을 입고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구체적인 내용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예배를 드릴 때 어떤 옷을 입고 와야 한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나와 있지 않다고 해서 내가 입고 싶은 대로 아무렇게나 옷을 입고와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정하고 정숙하게 옷을 입고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성경에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갖춰야 할 예의이기도 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에는 이렇게 하는 것임을 보이기 위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던 때는 그리스도인들이 엄청난 박해를 받기도 하고 또 애매한 오해를 받기도 했던 때였습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교회의 제도와 문화를 비그리스도인들은 단순하게 낯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아주 이상한 것이나 잘못된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바울을 곤경에 빠뜨리기도 하고 고소를 하였던 사람들의 주된 주장이 우리가 알지도 못하고 지키지도 못할 이상한 풍습을 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신앙에 위배 되는 것이 아니라면 사회에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관례를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기독교를 적대시 하는 사람들에게 오해와 악선전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으려고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바울은 2절에서 고린도인들이 바울이 전하고 가르친 신앙의 전통을 잘 따르고 지키는 것처럼 신앙에 위배 되는 것이 아니라면 사회적인 관례와 전통을 소홀히 여기지 말고 존중하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평안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은혜가 되지 말은 절제하고 잠잠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배를 드릴 때에 누가 보더라도 이상하지 않고 어색하지 않으며 최선의 예의를 갖추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옷을 입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비난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말씀뿐만 아니라 말씀에 위배 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면 사람의 관습과 관례도 소홀히 하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믿음과 삶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게 되며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말씀 적용을 위한 나눔

  •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어떠한 마음으로 드리십니까? 어떤 복장과 모습으로 예배 드리십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십니까?

2. 여러분들이 꿈꾸는 우리 교회 예배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그런 예배가 되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기도 / 인도자

헌금 / 288장 / 다같이

봉헌기도 / 맡은이

주기도 / 다같이

 

※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은 찬송가 앞부분에 나와 있는 새번역 사도신경새번역 주기도문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2023-09-0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 고린도전서 10:23-33

 

신앙고백 / 다같이

찬송 / 368장 / 다같이

기도 / 회원중

성경봉독 / 고린도전서 10:23-33/ 다같이

말씀나눔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 인도자

 

오늘 본문에서는 이처럼 단순하게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느냐 먹지 않느냐의 문제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들이 먼저 고려하고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겠습니다.

첫째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들 삶에 가장 기본적이고 어떻게 보면 아주 사소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것입니다. 31절을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내가 하는 일이 옳은 것이 분명하고 내가 하는 말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경우에 어긋난 말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으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옳은 말이라고 할지라도 때로는 입을 다물고 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고, 옳은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때로는 양보하거나 뒤로 미루는 것이 유익하며 은혜로울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누구에게도 상처를 입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32절을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우리가 읽은 말씀 가운데 “거치는”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ἀπρόσκοπος) 걸림돌 혹은 장애라는 뜻이지만 더 정확한 의미는 누군가를 공격해서 상처나 해를 입힌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교회에서 누군가를 공격해서 상처를 입히거나 해를 입힌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교회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그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내가 의도해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무의식중에 한 말이나 행동들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 될 수 있고 또한 다른 사람의 신앙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반복적으로 말하는 것이 나를 부정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구원을 받는데 아무런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고 해서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는데 그것 때문에 누군가의 믿음에 나쁜 영향을 주면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주거나 은혜를 까먹는 것이 아니라 피차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일에 더욱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9장과 10장에서 보았던 것처럼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권리를 포기하고서라도 때로는 종이되어서 섬김으로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덕을 세우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33절을 같이 읽으십니다.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세상의 다른 신을 믿는 것과 구별되는 특징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것 하나가 이타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세상의 다른 신을 섬기는 모든 행위는 거의 다 나를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장독대에 물을 떠놓고 비는 것도, 고목나무 아래에서 비는 것도, 성황당에서 비는 것도, 집에 어떤 신을 모셔 놓고 그 앞에서 비는 것도 모두가 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먼저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자기를 낮추어 우리와 같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본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우리들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로 나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라고 말씀을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처럼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어도 되느냐 아니면 먹으면 안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먹든지 안 먹든지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느냐, 다른 사람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고 모두를 유익하게 하는 것이냐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교회에 와서 청소를 하는 것도, 집에서 내 식구를 위해서 밥을 하는 것도 귀찮은데 교회에 와서 내 식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을 위해서 밥을 하는 것도, 내 자식 가르치기도 힘든데 교회에서 어린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도 그리고 그 밖에 내가 교회에서 땀 흘리고 수고하는 모든 것이 이처럼 나의 헌신으로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일인 줄 믿습니다.

한복음 3:30절에서 세례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말할 때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라고 말한 것처럼 나를 통해서 예수님은 더욱 높임을 받으시고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신앙과 삶에는 더 큰 유익이 있게 하는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이 믿음으로 생활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할 줄로 믿습니다.

 

 

 

*말씀 적용을 위한 나눔

  •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일들을 하고 계신가요? (가정, 직장, 교회등등)

 

2. 내가 교회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 하여 혹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말로 상처를 준 적이 있습니까?

기도 / 인도자

헌금 / 370장 / 다같이

봉헌기도 / 맡은이

주기도 / 다같이

 

※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은 찬송가 앞부분에 나와 있는 새번역 사도신경새번역 주기도문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2023-08-27] 주님의 잔과 귀신의 잔 - 고린도전서 10:14-22

 

신앙고백 / 다같이

찬송 / 430장 / 다같이

기도 / 회원중

성경봉독 / 고린도전서 10:14-22/ 다같이

말씀나눔 / 주님의 잔과 귀신의 잔 / 인도자

 

오늘 본문은 이미 우리가 앞에서 보았던 10:1-13에 연결이 되는 말씀입니다.14절을 같이 읽으십니다.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숭배 하는 일을 피하라” 이 말씀은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단순하고 일반적인 말씀이 아니라 좀 더 구체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16,17절과 20절과 21절을 읽어 보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먼저 16,17절을 읽어 보시겠습니다. 특히 읽을 때 반복되는 단어가 무엇인지 잘 보시면서 읽어 보십시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이번에는 20,21절을 읽어 보시겠습니다.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같이 읽은 말씀을 보면 ‘참여한다’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고 그 증표로 세례를 받고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우상을 섬기는 자리에 가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을 향해서 우상을 섬기는 자리에 가 있는 것과 그 자리에서 우상의 제단에 잔을 올리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를 강조해서 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적인 것과 친구가 되어서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고 예수님과 친구가 되어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귀에게 그리고 세상적인 것에 발이 묶여서 그것들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진노와 파멸을 향해서 나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발이 묶여서 동행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인도해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또 하나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우상숭배 하는 일을 피하라”고 말씀은 단순하게 “우상숭배 하는 일을 피하라”는 소극적인 의미가 아니라 “우상으로부터 달아나라. 혹은 도망가라”라는 강력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φεύγετε : flee). 고린도전서 6:18절을 보면 “음행을 피하라”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도 단순하게 음란한 일을 피하라는 것이 아니라 음란한 것으로부터 아주 멀리 달아나라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나 음란한 것이 무서워서 그것으로부터 도망가고 달아나라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그것을 가까이하지 말고 아주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3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음행과 더러운 것과 탐욕은 아예 그 이름조차 부르지 말고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주목해야 할 것이 있는데 21절에 나오는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라는 말씀입니다. “귀신의 잔”이란 문자적으로 보면 우상에게 제사를 드릴 때 바치는 잔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귀신의 잔’은 세상적인 것으로 채워지는 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주님의 잔’이란 은헤로 채워지는 잔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보면 귀신의 잔은 이기적인 자기만족으로 채워진 잔을 말합니다. “주님의 잔”이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귀신의 잔”이란 마시는 순간에는 만족을 주지만 거짓과 환상으로 가득 차서 마셔도 마셔도 만족이 없고 오히려 갈증만 더한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잔”이란 진실로 가득 찬 잔입니다. 진실은 처음에는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것 같지만 결국에는 그것이 승리하는 것처럼 “주님의 잔”은 마실 때 당장은 힘들지만 결국 그 잔을 끝까지 마시는 사람에게는 공의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그 사람의 삶과 영혼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귀신의 잔”이란 나의 육신만을 위하여 마시는 잔이지만 “주님의 잔”은 나의 영혼을 위해서 마시는 잔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럴듯한 것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마귀의 잔과 같은 육신의 쾌락, 세상적인 기쁨, 물질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보잘것없어 보이고 별 것 아닌 것 같아서 가까이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를 영생으로 그리고 진정한 축복으로 이끄시는 주님의 잔인 말씀과 주님의 은혜 가운데로 깊이 들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저하지 않고 주님의 잔을 기꺼이 드는 우리 모두에게 주님께서 그 잔에 평안을 위로를 그리고 축복을 가득 채워 마시고 누리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말씀 적용을 위한 나눔

  •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참여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 하고 계십니까?

 

2. 하나님보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하나님보다 내가 더 사랑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이런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데 방해는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우상을 피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합니까?

기도 / 인도자

헌금 / 442장 / 다같이

봉헌기도 / 맡은이

주기도 / 다같이

 

※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은 찬송가 앞부분에 나와 있는 새번역 사도신경새번역 주기도문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2023-08-20] 넘어질까 조심하라 - 고린도전서 10:1-13

 

신앙고백 / 다같이

찬송 / 353 장 / 다같이

기도 / 회원중

성경봉독 / 고린도전서 10:1-13/ 다같이

말씀나눔 / 넘어질까 조심하라 / 인도자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지 못하게 하고 그들을 사로잡게 되었던 파괴적 욕망 네 가지를 말하며 그것을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첫째로는 ‘우상숭배 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7절을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이러한 말을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고린도라는 지역뿐만 아니라 바울이 살았던 당시의 상황이 우상숭배가 일상인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물질이라고 하는 우상, 탐욕이라는 우상, 쾌락이라는 우상, 자기 사랑이라는 우상에 빠져서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돌이켜 보시기를 바랍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의 말씀에만 순종하는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음행을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8절을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음행을 하다가 하루에 몇 명이 죽었다고 말씀합니까? 이만 삼천 명이 죽었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민수기 25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향해서 가다가 싯딤이라는 곳에 머물게 되었는데 바로 그곳에서 “모압 족속의 여자들과 음행을 저지르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음행은 단순하게 음행으로 그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여자들이 자기들의 신들에게 제사를 할 때에 그들과 더불어서 먹고 즐기며 그들의 신에게 절을 하게 되었다고 말씀하면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라고 말합니다. 우리말로는 “가담하였다”고 번역이 되었는데 더 정확한 말은 “결합하다”는 말입니다. join했다는 말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진노하셨고 이렇게 바알브올과 join 한 사람 이만 사천 명이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죽었는데 우리들도 이런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린도라는 지역의 상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린도에서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주신으로 섬기고 있었는데 바로 이 아프로디테를 섬기는 신전에서 여사제와의 성행위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곤 했습니다. 우상과의 결합, join은 음행으로 이어지듯이 우리들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그것의 노예가 되면 우리들도 음행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상과 결합 되고, 세상적인 욕망과 결합 되면 필연적으로 우리의 삶은 문란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과 결합 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성결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으로 날마다 성결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번째 오늘 본문을 보니까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9절을 같이 읽으시겠습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성경은 불평하고 원망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시험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불평과 원망이 어떻게 시험과 연관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그리고 믿지 못하고 의심하기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불평은 곧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뿐만 아니라 출애굽기 17:7절을 보면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이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흔히 할 수 있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었고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책망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평과 원망은 그리고 불신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을 보면 “원망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10절을 같이 읽으시겠습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이 말씀은 민수기 14장과 16장에 나오는 말씀이 배경입니다.

원망은 꼭 노골적으로 불평불만을 얘기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원망이라는 말의 헬라어 단어는 ‘투덜거린다’ 혹은 ‘중얼거린다’는 뜻이 있습니다(γογγύζω).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에서나 집에서나 아니면 여러분의 일터에서나 투덜거리는 사람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을 보지 않고 가지지 못한 것을 보는 순간부터 불만과 불평과 원망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유를 주시고 한 나라를 이루게 하시며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고 계시다는 큰 사실을 잊어버리고 먹을 것 마실 것이 떨어졌다는 작은 사실 때문에 곧바로 하나님을 원망하곤 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오늘까지 우리에게 베푸시고 행하신 일들은 생각하지 않고 나에게 베푸시지 않고 행하지 않으신 일들만 생각하면 금방 불만과 불평과 원망을 일삼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원망은 곧 멸망의 길이라고 사도 바울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며 순종할 줄 아는 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고 복된 길임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광야로 이끄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때로는 반석에서 물을 주시고 만나로 먹여주시게 되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고난 가운데도 피할 길을 열어 주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시며 인도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날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말씀 적용을 위한 나눔

  • 은혜안에 살고 계신가요? 아니면 우리안에 욕망에 사로 잡혀 살아가진 않는지 나누어 봅시다. 요새 내가 하나님보다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2. 오늘 본문에 나오는 4가지 욕망중 나를 유독 힘들게 하고 넘어지게 하는 욕망은 무엇입니까? 내안에 욕망을 다스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기도 / 인도자

헌금 / 342장 / 다같이

봉헌기도 / 맡은이

주기도 / 다같이

※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은 찬송가 앞부분에 나와 있는 새번역 사도신경새번역 주기도문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2023-08-13] 내 몸을 쳐서 복종함은 - 고린도전서 9:24-27

신앙고백 / 다같이

찬송 / 314 장 / 다같이

기도 / 회원중

성경봉독 / 고린도전서 9:24-27/ 다같이

말씀나눔 / 내 몸을 쳐서 복종함은 / 인도자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기까지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알 수 있는데 그것을 세 가지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오늘 본문 25절에 나오는 “절제”라는 말입니다. 우리 25절을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같이 읽은 25절을 보면 바울은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절제’라는 것은 두 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절제라는 말은 다른 말로 ‘자기를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신앙적으로 절제라는 말은 단순하게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차원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자신을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고 대접받고자 하는 마음을 이기고 온전히 헌신하기 위해서 자신을 성령께서 주시는 힘으로 다스렸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자신을 다스려서 종으로서의 삶을 살고, 자신의 목숨까지도 주님을 위하여 드리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나 자신도 모르게 욕망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 것도, 자신도 모르게 혈기를 부리는 것도, 게으르게 되는 것도 절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절제는 내 힘과 노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으로 되는 줄 믿습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스스로를 다스리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주목할 것은 목표가 분명하고 한눈을 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9:26절을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달리기 경주를 하는 사람이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지 않고 다른 데로 달려가면 그 수고가 헛되고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입니다. 신앙생활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가야 할 길을 분명히 알고 길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그 수고가 헛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2절을 보면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선이 예수님에게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 주님을 온전히 모시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세상적인 것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도구와 일군으로 온전히 내어드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시선과 마음을 빼앗는 세상적인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전에는 교회 오는 것이 기대되고 즐겁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보다 재밌는 곳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세상적으로 우리를 기쁘게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시선과 마음을 세상적인 것에 빼앗기고 살아갈 때가 너무 많습니다. 바울도 육신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편안함에 대한 유혹이나 권위와 권리를 주장하고자 하는 유혹이 얼머나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이 십자가의 길이고 자신이 바라보고 닮아야 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도 목표를 분명히 하고 한눈 팔지 말고 믿음의 경주를 잘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또 하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7절을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자기 몸을 친다는 이 말의 헬라어 원문의 뜻은 “멍이 들도록 자기 몸을 때린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멍이 들도록 자신의 몸을 때린다고 말씀하는 것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일이 그만큼 어려운 일이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절제하고 흔들리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고 온전히 하나님의 일에 자신을 내어드리기 위해서는 이런 노력과 열심히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엄격하게 자신을 때리듯이 훈련하고 절제하여서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복종을 시켜야지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짓는 것은 아주 쉽게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일은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일은 자신을 때리듯이 훈련하고 절제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믿음의 사람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맡기신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절제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신앙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나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절제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갈 수 있도록 자신을 멍들 정도로 쳐서 주님의 말씀과 뜻에 복종시킬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이 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일을 아름답게 이루어 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 적용을 위한 나눔

  • 하나님의영광을 위해 무엇을 희생하고 계신가요?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절제하고, 한눈을 팔지 않고, 자신의 몸을 쳐 복종하케 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바울과 같은 마음으로 신앙생활하고 계십니까?

기도 / 인도자

헌금 / 323장 / 다같이

봉헌기도 / 맡은이

주기도 / 다같이

※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은 찬송가 앞부분에 나와 있는 새번역 사도신경새번역 주기도문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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