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2023-08-06]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 고린도전서 9:19-27

신앙고백 / 다같이

찬송 / 310 / 다같이

기도 / 회원중

성경봉독 / 고린도전서 9:19-27/ 다같이

말씀나눔 /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 인도자

 

예수님께서 종이 되어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과 베드로가 스스로 주님의 종이 되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오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었는데 오늘 본문 19절 끝부분을 보니까 “종이 됨으로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주님의 종이 되어서라도 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너무나도 귀하고 큰 것이어서 종이 되어서라고 그 은혜를 갚아야겠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길래 종이 되어서라도 은혜를 갚으려고 했던 것일까요? 그냥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자신들을 구원해 주신 은혜가 너무나도 귀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더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기꺼이 자발적으로 종이 되었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스스로 종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사도행전 20:24절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이룰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것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는다.’고 고백을 합니다.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서 평생동안이라도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것에서,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는 것, 복음을 위해서 기꺼이 종이라도 되겠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놓겠다고 점점 더 복음을 향한 강한 헌신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나 베드로가 받았던 은혜는 그들만이 받았던 특수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가 경험한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바울이나 베드로가 고백을 하고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았던 것처럼 우리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값비싼 은혜”를 “값싼 은혜”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값비싼 은혜를 값싼 은혜로 만들어 버린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값싼 은혜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를 생각은 하지 않고 배부르고 편안해지기만을 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복음을 위하여 종이 되었다고 고백을 하는데 이것이 바로 값비싼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한 믿음의 사람의 모습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가 겨우 배부르고 편안하게만 하려고 주시는 것이 아니라 친히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이 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도 주님의 그 은혜를 따라 종의 모습으로 하나님과 성도와 이웃을 섬기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함인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값비싼 은혜를 싸구려 은혜로 만들어 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오늘 본문을 읽다보면 계속해서 반복해서 나오게 되는 말이 있는데 “얻는다”는 말입니다.

말은 “구원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그가 종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자주 반복되는 “얻는다”는 말은 헬라어 κερδαίνω(케르다이노)라는 단어에서 왔는데 이 말은 구원한다는 혹은 얻는다는 말 외에도 “이긴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얻는다”는 말을 “이긴다”는 말로 바꿔보면 주님께서는 종이 된 사람이 결국 이기게 하신다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원한다면 나는 그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기 원한다면 역시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역설적이지만 내가 승리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역시 종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세상적으로 보면 종이 되어서는 결코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본 빌립보서 2:7절에서 예수님께서 종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보았는데 바로 그런 예수님을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높이셔서 모든 것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주라고 부르게 하셨다고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일과 달라서 종이 되어서 섬기지 않고서는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시든지 종이 되어서 그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에서도 그리고 이웃을 향해서도 종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종이 되어서 일하고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종의 삶을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인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종의 삶은 자기의 의지가 아닌 주인의 뜻대로 이루어집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이렇게 믿음 안에서 종이 되어서 일하고 섬겨야 하는데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사실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주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을 하면서 작은 불편이나 어려움만 있어도 불평하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어려움과 불편함을 넘어서서 아예 종이 되어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이런 믿음으로 주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게 될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존귀하게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게 하시는 은혜를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 적용을 위한 나눔

  •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값비싼 은혜로 살아가십니까? 아니면 값싼 은혜의 삶을 살고 계십니까?

 

  • 우리도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주인으로 인정하며 살아 가십니까? 종으로써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까요?

 

기도 / 인도자

헌금 / 325/ 다같이

봉헌기도 / 맡은이

주기도 / 다같이

※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은 찬송가 앞부분에 나와 있는 새번역 사도신경새번역 주기도문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2023-07-30] 복음에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 고린도전서 9:1-18

신앙고백 / 다같이

찬송 / 300 / 다같이

기도 / 회원중

성경봉독 / 고린도전서 9:1-18/ 다같이

말씀나눔 / 복음에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 인도자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이 옳고 그르냐를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연 이것이 하나님의 일에 유익한가 그렇지 않은가, 이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덕을 세우는 일인가 그렇지 않은가,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먼저 살펴 볼 줄 아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 모두가 내가 하는 말이 옳은 말이라고 할지라도, 내가 하는 행동이 거리낄 것이 없이 옳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지 못하며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면 절제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원칙을 양보하고서라도 덕을 세우며 하나님의 일에 유익을 끼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 참 큰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흔히 말하는 시험에 들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거나 대접해주지 않아서 섭섭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마귀 중에 가장 무서운 마귀가 섭섭마귀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내가 이렇게 헌신적으로 일하고 열심히 일했는데 겨우 나를 이 정도밖에는 대접해주지 않느냐라고 생각하면 그 순간부터 시험에 들게 되고 하나님과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 힘들게 일하고 수고하는데 누가 도와주고 알아주기는커녕 오히려 듣기 싫은 소리를 듣고 경우에 따라서는 애매한 오해를 받아서 오히려 불편하고 힘들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이기지 못하면 역시 흔히 하는 말로 시험에 들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바울은 바로 그런 일을 자신이 복음을 전하고 교회의 기초를 세운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서 오해를 받기도 하고 자신의 사도성을 의심하는 의혹의 눈초리를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것을 조금도 섭섭하다 생각하지 않고 담담하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할 뿐 아니라 수많은 고초를 당하거나 목숨이 위태로운 경우를 당하면서도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은 누구로부터 대접을 받거나 칭찬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 알아주든지 알아주지 않든지, 누가 뭐라고 하든지 바울이 고백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을 하시고 주님이 내게 맡겨주신 일을 믿음으로 잘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혜받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중요한 증거 중 하나는 바울처럼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아니 권리를 포기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내놓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바울은 빌립보서 2:17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성도들을 위해서 자신의 피를 온전히 쏟아부어도 오히려 그것이 자기에게는 기쁨이 된다는 고백입니다.

 

은혜받은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따라 살 수밖에 없고 예수님을 따라서 사는 사람이라면 이처럼 덕을 세우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데 장애가 없도록,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권리조차도 포기하고 오히려 비난과 애매한 의혹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며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인 줄 믿습니다.오늘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우리 모두가 이런 다짐을 하고 마쳤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게만 된다면.손해를 봐도 괜찮다. 주님의 일에 도움만 된다면 애매하게 오해를 당해도 괜찮다. 주님의 교회가 평안하게만 된다면 당연한 것으로 알았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누가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이 알아주시는 것만으로도 족하다는 믿음으로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게 되심으로 우리의 이 헌신과 섬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유익하게 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말씀 적용을 위한 나눔

  • 삶가운데 내가 하는 일들이 하나님이 일에 유익이 되는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덕을 세우는 일인가? 라고 생각하면서 일을하고 계십니까? 나의 유익을 위해 일할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 유익을위해 그리스도인의 덕을 세우기 위해선 우리가 은혜가 충만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날마다 은혜가 충만하십니까?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가진 권리를 포기해야 하는 순간에도 은혜가 가득하십니까? 은혜가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까요?

기도 / 인도자

헌금 / 302/ 다같이

봉헌기도 / 맡은이

주기도 / 다같이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은 찬송가 앞부분에 나와 있는 새번역 사도신경새번역 주기도문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2023-07-23]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 고린도전서 8:1-13

신앙고백 / 다같이

찬송 / 218 / 다같이

기도 / 회원중

성경봉독 / 고린도전서 8:1-13/ 다같이

말씀나눔 /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 인도자

 

오늘 본문은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어도 되느냐 먹으면 안 되느냐에 대한 문제입니다. 고린도교회에서 이런 상황에 대해서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신앙의 경륜도 깊고 지식도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은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어도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유일하고 전능하신 분이며 이방인들이 믿는 신은 생명이 없는 돌조각이나 나무 조각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런 생명이 없는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5:11장에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라고 말씀을 하셨으니 우상에게 바쳤던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과거에 우상숭배를 했던 사람들이었거나 그렇지는 않더라도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믿음의 경륜이 얼마 안 되고 뿐만 아니라 과거에 우상을 섬겼던 경험이 있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에 우상에게 바쳤던 음식을 먹으면 그 음식을 통해서 우상의 힘이 작용하거나 자신들이 부정해진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사람들은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으면 뭔가 신앙양심에 거리낌이 있었고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우상에게 바쳤던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바로 이런 믿음을 통해서 얻게 되는 구원과 실제 생활 사이에서 생기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바울에게 물어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르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보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아주 원론적이면서도 중요한 것을 말씀하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1-3절에서 제시를 하고 있습니다.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누구나 우상에게 바쳤던 음식을 먹는 사람도 또 먹지 않는 사람도 다 자기 나름대로의 판단 기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8:9절과 13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먼저 8:9절입니다.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3절을 읽으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이 말씀은 음식을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신앙의 유익을 위해서 때로는 음식을 삼가기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일부러 먹을 필요까지는 없다고 하더라도 먹는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것이 피차에 덕을 세우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우상에게 바쳤던 음식을 먹어도 되느냐 아니면 먹으면 안 되느냐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이 말씀은 우리들의 신앙생활 전반에서 우리가 어떤 모습과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이 하는 일들이 피차에 방법이 달라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있어도 방식이 잘못된 것이어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자기의 방식이나 입장을 주장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 본문 13절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내가 하는 일이 아무리 옳은 것 같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모두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거나 다른 누군가를 실족하게 할 수 있다면 그 일을 포기하거나 양보할 수 있는 것이 진정으로 은혜로운 사람의 모습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교회에서는 내가 백번을 생각해 봐도 옳다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보하고 뒤로 물러서야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내가 잘못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내가 잘못했다고 해야 할 때도 있고, 내가 좀 손해를 보더라고 잘못한 사람에 대해서 그것을 덮고 넘어가야 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덕을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내용을 고린도전서 10:23,24절에서 잘 정리해서 말하고 있는데 쉽게 번역된 새번역 성경으로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모든 것이 다 허용된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모든 것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다 허용된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모든 것이 다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닙니다. 24.아무도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추구하십시오.”

우리가 생각할 때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다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은 무엇을 하든지 “누가 옳고 그르냐를 따지기에 앞서서 이렇게 하는 것이 과연 다른 사람 앞에서 덕을 세우는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냐”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주님이 아무 죄가 없으시지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의 형체를 비워 종과 같이 되셨고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온전히 자기를 비워 주님을 닮기 위해서 노력하며 그 믿음을 통해서 주님을 영화롭게 하며 믿음의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유익하게 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이런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우리 모두를 주님은 기뻐하시고 그런 삶을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 적용을 위한 나눔

  • 나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한 적이 있나요? 내 방법이 옳다고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적이 있나요?
  • 옳다고 하는 방법으로 일을 진행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적이 있나요? 교회 공동체안에서 일을 할 때 가장 조심히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기도 / 인도자

헌금 / 220/ 다같이

봉헌기도 / 맡은이

주기도 / 다같이

※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은 찬송가 앞부분에 나와 있는 새번역 사도신경새번역 주기도문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2023-07-16]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 고린도전서 7:25-40

 

신앙고백 / 다같이

찬송 / 288/ 다같이

기도 / 회원중

성경봉독 / 고린도전서 7:25-40/ 다같이

말씀나눔 /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 인도자

 

오늘 본문을 27-28절을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그러나 장가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을 가도 죄 짓는 것은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특별히 28절 말씀을 쉽게 번역된 새번역 성경으로 한 번 더 읽어 보시겠습니다. 그러나 결혼한다고 할지라도,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처녀가 결혼을 하더라도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이 살림살이로 몸이 고달플 것이므로 내가 아껴서 말하는 것입니다.” 28절을 보면 “(결혼한 사람은) 살림살이로 몸이 고달플 것”이라고 말합니다. 뿐만아니라 34,35절을 보면 장가간 사람은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까 염려하고 역시 시집간 여자는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까 염려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서 단순하게 결혼하면 서로에게 신경 쓸 일이 많고 고달프니 그냥 혼자 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26절 말씀 35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먼저 26절을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35절을 같이 읽습니다.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25절과 35절의 말씀을 종합해서 보면 마지막 때에 다른 것에 얽매이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주님을 섬기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혹시 ‘가족 우상’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가족우상”이란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 가족이 우상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데는 인색하기도 하고 또 계산하는 것도 많지만 가족을 위해서 사용하는 데는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다른 것과 비교해서 가족이 1순위가 되어야 하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마저 제쳐 놓고 가족이 최우선 순위가 되다 보니 문제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36-3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이것을 경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아버지나 어머니를 아내나 남편을 그리고 자식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아내와 남편을 사랑하고 존경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거나 하나님 보다 더 큰 비중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족우상에 빠지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내가 내 가족을 책임지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내 가족을 책임져 주시는 것이 더 안전하고 또한 복된 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내 가정, 내 가족을 맡기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더 나아가서 오늘 본문에서는 또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30-31절을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오늘 본문에서는 단순하게 ‘가정과 가족에게만 얽매이지 말라’고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에 얽매이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라고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주로 어떤 경우에 울게 됩니까? 물론 기뻐서 우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것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고 대부분은 슬프고 힘들 때 울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까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고,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라.’고 말합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31절 끝에서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라는 말에 그 답이 들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반드시 사라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영원할 것 같던 기쁨도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 끝날지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고통과 슬픔도 끝이 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나를 편안하게 해 주고 만족시켜 줄 것 같던 물질도 사라질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울게 하였던 고통이나 환란도 결코 영원하지 않으니 우는 자는 울지 않는 자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나를 행복하게 해 주던 기쁨도 역시 영원하지 않으니 기쁘지 않은 것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행복하고 기쁜데 억지로 그것을 감추거나 기쁘지 않은 척 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지금 기쁘고 행복하다고 해서 거기에 도취되어 있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역시 지금 내가 슬프고 괴롭고 힘들다고 해서 거기에 깊이 빠져서 낙심하고 절망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다 지나가는 것이고 역시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빠져있지 말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흔들리지 말고 주님을 섬기라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할 때 신앙생활에 장애가 되도록 우리를 얽어매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가족관계나 친구관계처럼 인간관계에 얽매여서 신앙생활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그리스도인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할 때도 있습니다. 바로 이런 환경 가운데 사는 우리들을 향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주변의 모든 것들은 결국 다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이니 어떤 것에도 얽매이거나 그것에 집착하지 말고 흔들림 없이 주님을 섬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은 가족이라는 우상을 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슬픔과 절망이라는 늪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며 하나님과 멀어지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적인 기쁨과 편안함이 주는 달콤함에 빠져서 역시 하나님과 멀어지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말씀 적용을 위한 나눔

  • 보다 가족을 더 우선시 여겼던 적이 있습니까? 어떤 경우에 그렇게 되나요? 가족보다 하나님을 우선시 여길 수 있는방법은 무엇일까요?
  • 요즘 집착하고 있거나 관심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일과 사역을 소흘히 한적이 있나요? 나는 하나님의 일과 사역을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까?

 

기도 / 인도자

헌금 / 370/ 다같이

봉헌기도 / 맡은이

주기도 / 다같이

※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은 찬송가 앞부분에 나와 있는 새번역 사도신경새번역 주기도문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2023-07-09]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 고린도전서 7:17-24

 

말씀과 함께 하는 일주일

(고린도전서 2023. 7. 9)

신앙고백 / 다같이

찬송 / 365/ 다같이

기도 / 회원중

성경봉독 / 고린도전서 7:17-24/ 다같이

말씀나눔 /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 인도자

 

오늘 본문을 보면 먼저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바로 17절에 들어 있는 내용입니다. 17절을 같이 한 번 읽어 보시겠습니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우리가 같이 읽은 17절을 보면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은 바울이 살고 있던 당시의 사회의 특징을 잘 알아야 이해를 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는 적어도 신분제 사회는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상하 관계는 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주종관계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생활하던 당시의 상황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신분이 존재하고 있었던 그 시대에 복음은 신분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었습니다. 남자와 여자, 유대인과 이방인, 부자와 가난한 사람 그리고 주인과 노예 등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전파 되었고 이렇게 전해진 복음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때문에 교회에는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심지어는 사회에서라면 얼굴조차 쳐다보기 힘든 분명한 신분의 차이가 있는 사람들끼리도 교회 안에서는 형제와 자매로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양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면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그런데 그 중에서도 특히 남들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남들보다 낮은 신분에 있는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엇을 소원했겠습니까? 두 말할 것도 없이 자신들의 삶이 더 나아지고 더 나아가서는 신분이 바뀌게 되기를 간절히 원했을 것입니다. 가난 한 사람들은 잘 살게 되기를 소원 했을 것입니다. 노예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자신들이 노예상태에서 해방이 되어서 하루 속히 자유인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했을 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가장 큰 기도의 제목이기도 했고 또한 가장 큰 소원이기도 했다는 말입니다. 특히 교회 안에는 자유인 보다는 노예가 더 많았고 잘사는 사람보다는 못사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던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는데 그렇다면 교회 구성원의 대부분이 이렇게 자신의 신분이 바뀌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바울은 그런 인간적인 강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21절을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노예인 상태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자유롭게 될 기회가 있다면 자유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하게 이렇게만 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이미 읽은 17절과 20절을 보면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부자가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리고 노예였던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 신분의 벽을 뛰어 넘을 수 없는데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자유인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보면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좋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지금 내 신분이 어떠하든지 그리고 내가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 살고 있든지 하나님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라고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24절을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24절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는 말이나 17절에서 말하는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그리고 20절에서 말하는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는 말은 은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따라서 하나님과 함께(더불어)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사람들이 돈을 벌고, 성공하고, 출세를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에 비중을 두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의 종이 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돈을 벌려고 노력하다 보면 돈의 노예가 되기 쉽고, 성공하고 출세를 하려고 하다 보면 세상적인 권력이나 명예의 노예가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3절을 보니까 너희는 값으로 산 것이니 사람의 종이 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의 종만 되지 말 것이 아니라 세상적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 육신적으로 잘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든지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우리가 정말 열심히 노력을 해서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을 뛰어 넘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잃어 버렸다고 한다면 우리가 얻고 이룬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은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공하는 것도 좋고 잘 살게 되는 것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더불어 살지 않으면 그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가장 중요한 기도의 제목이 그리고 우리들의 가장 큰 신앙의 목표가 어떤 상황에서든지 내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든지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것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사는 사람이고 바로 이런 믿음의 목표와 기도의 제목을 갖고 생활하는 우리들의 삶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여 주시는데 우리가 미처 기도하지 않았던 것까지도 허락하시고 채워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말씀 적용을 위한 나눔

  • 교회 공동체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각자 부르신 소명도 다릅니다. 다름을 잘 인정하십니까? 이해하려고 얼마나 노력하십니까?
  • 함께 거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과 그리고 내가 내려 놓아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현재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고 있는일은 무엇인가요? 혹시 이 집중하는 일이 하나님과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도 / 인도자

헌금 / 368/ 다같이

봉헌기도 / 맡은이

주기도 / 다같이

※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은 찬송가 앞부분에 나와 있는 새번역 사도신경새번역 주기도문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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