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2023-04-23] 어떻게 세울까 조심하라 - 고린도전서 3:10-15

신앙고백 / 다같이

찬송 / 321/ 다같이

기도 / 회원중

성경봉독 / 고린도전서 3:10-15 / 다같이

말씀나눔 / 어떻게 세울까 조심하라 / 인도자

 

오늘 본문은 비유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목회자는 목회자대로, 성도 개인은 그 사람대로 우리는 모두 영적인 건축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집을 지을 때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집을 짓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이 말씀은 곧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집을 짓는 것과 같은데 금이나 은이나 보석 같은 것으로 집을 짓는 사람은 최선을 다해서 그리고 성실하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반면에 나무나 풀이나 짚 같은 허술하고 보잘 것 없는 재료로 집을 짓는 사람은 대충대충 그리고 마지 못 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좋은 재료를 써서 지은 집이나 좋지 못한 재료를 써서 지은 집이나 겉으로 볼 때는 차이가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될 때가 있는데 불같은 시험과 환난을 당할 때 그 실체가 낱낱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 위에 서 있고, 또한 목회자가 최선을 다해서 말씀으로 은혜로 성도를 양육하면서 교회를 세워 간다면 그 교회는 어떤 시험이 닥쳐와도 흔들리거나 타서 없어지지 않는 견고한 교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개인의 믿음이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의 사람으로서 하나님 앞에 부끄럼 없이 서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믿음의 노력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집을 온전히 세워 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내가 어떻게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섬기고 있는지 그리고 내 믿음의 집을 지금 어떻게 세워가고 있는지를 돌이켜 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금이나 은이나 보석 같이 귀한 것은 내 육신을 위해서 다 써버리고 나무나 풀이나 짚처럼 별로 값어치 없는 것들만 신앙을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짜투리 시간, 쓰고 남은 돈 이런 것만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지 않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손을 가득 채우는 진정한 헌신을 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일에 헌신함으로 귀한 재료를 써서 집을 짓는 사람처럼 되어서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잘 했다고 칭찬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해도 별로 달라지는 것도 없고, 눈에 띄는 열매도 없다고 낙심하는 분이 있지 않으십니까? 그러나 걱정하거나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비록 눈에 띄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여러분의 헌신과 노력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고 바로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칭찬하시고 상급과 면류관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중요한 신앙의 교훈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 설 때는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고 모든 것이 낱낱이 드러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무나 풀이나 짚 같은 허술한 재료로 집을 지은 사람도 겉은 그럴듯하게 포장을 하거나 꾸밀 수 있습니다. 재료는 어떻든지 간에 겉은 그럴듯하게 꾸밀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겉모양만 보고 속으시는 것이 아니라 불로 시험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게서 불로 시험하실 대 모든 것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미 은혜를 나눈 바 있는 히브리서 4:13절을 보면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뿐만 아니라 디모데전서 5:25절을 보면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않은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우리를 향해서 같은 말씀을 하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들 모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믿음의 집을 짓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 사역자들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좋은 재료가 되어서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든든하게 세워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은 후회가 남지 않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최선을 다해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 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머무시는 성전과도 같은 우리의 마음의 성전을 온전하게 세워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설 때 좀 더 잘 지을 걸...”이라고 하면서 후회를 하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더 나아가서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용서하고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섬기고 헌신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 보기에는 그럴듯하고 좋아 보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 있는 것도 없고 감출 수 있는 것도 없는데 정직하고 신실하게 하나님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말씀 적용을 위한 나눔

  • 몸된 교회를 세워 나가기 위해 얼마나 노력 하십니까?

2.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사역은 무엇입니까?

여건만 주어진다면 어떤 사역을 하고 싶으십니까?

3. 지금 내가 교회에서 하는 일이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다고 실족

하거나 실망한적 있으싶니까? 그럴 때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나 요?

기도 / 인도자

헌금 / 320/ 다같이

봉헌기도 / 맡은이

주기도 / 다같이

 

※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은 찬송가 앞부분에 나와 있는 새번역 사도신경새번역 주기도문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2023-04-16] 사역자 - 고린도전서 3:5-9

신앙고백 / 다같이

찬송 / 215장 / 다같이

기도 / 회원중

성경봉독 / 고린도전서 3:5-9 / 다같이

말씀나눔 / 사역자 / 인도자

 

오늘은 바로 이 사역자라는 말을 중심으로 직분과 관계되는 내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합니다. 바울은 자신뿐만 아니라 아볼로도 그리고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감당하는 모든 사람을 “사역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역자라는 말은 신약성경이 쓰여진 헬라어로 “διάκονος(디아코노스)”라고 합니다. 이 디아코노스라는 말이 오늘 본문에서는 사역자라는 단어로 번역이 됐는데 사실 이 단어는 일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직분을 받아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역자는 사실은 다 일꾼이라는 말입니다. 직분자는 사역자고 사역자는 곧 일꾼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목사도 일꾼이고, 장로님도 일꾼이고, 권사님도, 집사님도 일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역자, 혹은 일꾼을 뜻하는 디아코노스라는 말은 어디에서 나왔느냐 하면 ‘디아코니아’라는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디아코니아라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섬긴다” 혹은 봉사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에는 직분이라는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역자”라는 말은 본래 “섬기는 사람” 혹은 “봉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진정한 사역자 혹은 일꾼은 섬기고 봉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디아코니아’라는 말에는 “먼지를 일으킬 정도로 부지런히 움직인다.”는 뜻이 있습니다.

어떤 일꾼이어야 하느냐 하면 대가를 위해서 일하는 일꾼이 아니라 은혜에 감사해서 섬기고 봉사하는 일꾼이면서 먼지가 날 정도로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일하는 일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섬긴다. 봉사한다’는 뜻을 가진 ‘디아코니아’라는 말에는 직분이라는 뜻도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직분이라는 말은 주로 교회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사회에서는 직분이라는 말보다는 직급, 직위, 혹은 직책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사회에서 말하는 직급이나 직위 혹은 직책이라는 말에는 상하 관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책임에 따른 권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은 나의 생계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윗사람이 지시를 하면 내 맘에 들지 않아도 해야 합니다.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불이익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기분 나빠도, 마음에 내키지 않아도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에서는 직위나 직급이라는 말 대신에 직분이라는 말을 씁니다. 교회에 있는 모든 직분은 계급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모든 사역자, 일군은 계급상의 높낮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똑같이 섬기고 봉사하는 직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서 하는 모든 일을 누가 시켜서 하고, 시키지 않으면 하지 않는 그런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대가나 보상을 기대하고 하는 일이 아니라 철저하게 섬기고 봉사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직장과 교회는 이렇게 다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유지해 나가는 방법도 다릅니다. 직장은 이해관계가 얽혀있어서 맘에 안 들고 부당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견디면서 일을 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전담사역자가 아닌 이상 교회에서 일을 한다고 금전적인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내 삶에 눈에 보이는 어떤 이익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까 교회에서 어떤 일을 하다가 맘에 안 드는 일이 있어서 갈등이 생기게 되면 그것을 해결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직장처럼 직급으로 누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질서입니다. 그런데 어떤 질서냐 하면 계급을 통한 질서가 아니라 섬김을 통한 질서입니다. 교회가 유지되는 것은 바로 계급에 의해서, 혹은 어떤 세상적인 이해관계로 유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지나치게 목회자가 군림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교회에서는 지나치게 목회자를 우습게 여기는 데가 있어서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은 목회하는 교회에서 회의를 할 때 의견이 목사님과 몇몇 교인의 의견이 맞질 않아서 갑론을박했는데 어떤 권사님이 이렇게 얘기를 하더랍니다. “목사님은 우리가 헌금하는 돈에서 월급을 받으니까 우리가 하자는 대로 해야 해요.”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우리 교회에는 그런 생각을 하는 성도들이 안 계시겠지요? 이런 교회는 질서가 깨진 교회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시니 교회는 예수님 중심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교회도 하나의 조직이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고 영적인 훈련을 받는 목회자를 세워서 그를 중심으로 교회를 이끌어 가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들이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 모두가 사역자 혹은 일꾼인데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일하는 일꾼이냐 하는 것입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9절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바울이나 아볼로가 맡은 구체적인 일은 다르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같이 참여하고 있는 데는 차이가 없다고 말을 합니다. 자기 몫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누가 더 중요하고 그렇지 않고 하는 것을 가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너무나 분명하고 단순한 사실인 것 같은데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이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6,7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같이 읽으십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하나님의 올바꾼 일꾼으로 사역자로 쓰임 받는 여러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말씀 적용을 위한 나눔

1. 교회에서 어떤 마음으로 사역을 하십니까?

2. 교회에서 직분을 받을 때 어떤 마음이었습니까? 그때의 섬기고 자하는 마음과 지금의       마음이 동일합니까?

3. 올바른 직분자, 사역자의 마음가짐은 어떻해야 합니까?

기도 / 인도자

헌금 / 218장 / 다같이

봉헌기도 / 맡은이

주기도 / 다같이

 

※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은 찬송가 앞부분에 나와 있는 새번역 사도신경새번역 주기도문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2023-04-09]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 고린도전서 3:1-4

신앙고백 / 다같이

찬송 / 449장 / 다같이

기도 / 회원중

성경봉독 / 고린도전서 3:1-4 / 다같이

말씀나눔 /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 인도자

 

오늘 본문을 보니까 바울은 이렇게 사람을 중심으로 편이 갈라져서 분쟁을 겪고 있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향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한다”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생각할 때 어린아이와 같이 대한다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자신들을 생각 할 때 스스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었겠습니까?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스스로를 성숙하고 수준이 높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볼 때는 어린아이와 같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는 지적수준이나 사회적인 지위 경험과 관계없이 모든 것이 초보적이라는 것입니다.그런데 중요한 것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런 초보적인 상태를 벗어 버리고 그 믿음도 성장해서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영적으로도 성숙해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까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향해서 예수님을 믿은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그 영적인 수준이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라고 말하면서 안타까워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향해서 당신들의 영적 수준이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고, 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육신이나 세상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4절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영적인 사람과 육신적인 사람을 구분하는 여러 가지 기준과 특징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과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 또한 여러 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기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예수님 중심이냐? 아니면 사람 중심이냐?”입니다.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내 중심으로 생각하고 세상적인 기준을 따라서 살았고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은혜를 받기 전에는 그렇게 살았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면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을 중심으로 모였다가 흩어졌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늘 예수님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에 성도들은 자기들은 신앙생활의 연조도 쌓이고, 다양한 은사의 체험을 했기 때문에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보기에는 그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다 자란 어른 같지만 영적으로 미성숙하다고 말하면서 책망를 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예수님 중심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편이 갈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시기하고 다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을 향해서 “내가 신령한 사람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른 아이(adult child)는 교회만 힘들게 하는 게 아닙니다. 어른 아이가 결혼을 해서 사정을 이루면 그 가정이 어려움을 겪습니다. 직장에 다니면 주변의 동료들을 힘들게 합니다. 친구들을 힘들게 합니다.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말을 해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말을 하고, 행동을 할 때도 다른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들의 영적인 모습은 어떻습니까? 혹시 우리들의 영적인 모습도 어린아이와 같은 것이 아닙니까? 신앙생활을 오래 하긴 했는데 교회가 내 생각대로 돌아가야 하고, 예수님의 말씀보다 사람들의 말에 더 솔깃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사람들하고 모여서 나누는 잡담이 더 재미있다면 그건 미안하지만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 성남교회 모든 성도들이 영적으로 어린아이, 아니 어른 아이와 같아서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고, 주님께 책망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영적으로 더욱 성숙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육에 속한 사람입니까? 영에 속한 사람입니까? 여러분은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입니까?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입니까? 이 시간 나 자신을 잘 살펴서 하나님의 영을 내 안에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삶을 닮기 위해서 힘씀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

*말씀 적용을 위한 나눔

  • 스스로 생각할 때 육에 속한 사람 입니까? 영에 속에 사람 입니까?

2. 영에 속한 사람이 되어 영적 성숙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3.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삶이란 어떤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기도 / 인도자

헌금 / 456장 / 다같이

봉헌기도 / 맡은이

주기도 / 다같이

 

※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은 찬송가 앞부분에 나와 있는 새번역 사도신경새번역 주기도문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2023-04-02] 세상의 지혜, 하나님의 지혜 -

신앙고백 / 다같이

찬송 / 301 장 / 다같이

기도 / 회원중

성경봉독 / 고린도전서 2:6-16 / 다같이

말씀나눔 / 세상의 지혜, 하나님의 지혜 / 인도자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바울은 이렇게 고린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 오직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성도들이 단순하게 예수님을 믿는 것뿐만 아니라 좀 더 심오한 영적인 지혜를 갖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원했던 것만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단순하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초보적인 상태에만 머물러 있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연수가 더하면 더할수록 하나님의 뜻과 섭리 그리고 은혜와 능력이 어떠한 것인지를 깨닫고 그대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세상적인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까지는 아니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주님의 은혜와 능력 그리고 섭리와 인도하심이 어떠한 것인지를 경험하지 못했을 때는 영적인 지혜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세상적인 지혜, 혹은 세상적인 것들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습니다. ‘

하나님을 믿을 바에야 차라리 돈을 믿고 주먹을 믿으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적인 것을 얻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영적인 지혜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적인 지혜는 양면의 칼과 같아서 그것을 잘못 사용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돌이킬 수 없는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아무리 잘 사용해도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사는 동안에만 유익할 뿐입니다. 아니 영적인 지혜는 무시하고 세상적인 지식과 지혜를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세상적인 지혜도 중요하지만 먼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이고, 하나님의 능력이 어떠한 것이며,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알 수 있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지혜를 사모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세상에서는 얻을 수 없는 참 된 평안과 축복을 허락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적인 지혜의 특징은 감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2:7절을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하나님께서 영적인 지혜를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감춰두신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감추어져 있는 것 같은 영적지혜, 하나님의 지혜는 감추어져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드러내기도 하시는데 말씀을 통해서 비밀하고 감춰져 있는 것 같은 영적인 지혜를 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하셨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바로 그 역할을 하였던 것이고, 예수님께서 직접 오셔서 그 일을 하시고, 보여 주셨고, 그 이후에는 사도들과 주님께서 세운 목회자들을 통해서 감춰져 있고 비밀한 것 같은 하나님의 지혜를 알려 주셨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는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말씀을 읽고 듣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드러나 있고 열려 있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언제나 알 수 없는 비밀한 것이기도 하고 감춰져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혹시 상한 갈대지팡이와 같은 세상적인 것을 붙잡거나 그것을 의지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이제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 힘쓰고 그 뜻을 따라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나를 향해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 힘쓰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깨달아지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하면 오늘 본문 2:13절에서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님께서 내게 말씀을 믿을 수 있는 은혜와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또한 그 말씀을 따라서 살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고 그대로 살 수 있는 힘을 주실 줄 믿습니다. 또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 크신 평간의 축복과 은혜를 더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말씀 적용을 위한 나눔

  • 지혜를 얼마나 신뢰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교회에서 사역할때도 이 세상지혜로 사역을 할 때는 없었습니까?
  • 말씀을 깨닫기 위해선 영적인지혜가 필요합니다.

영적인 지혜를 얼마나 사모하고 계십니니까?

3. 혹시 세상적인 지혜로 하나님의 말씀을 보려 한 적은 없습니까?

기도 / 인도자

헌금 / 304 장 / 다같이

봉헌기도 / 맡은이

주기도 / 다같이

 

※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은 찬송가 앞부분에 나와 있는 새번역 사도신경새번역 주기도문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2023-03-26]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 고린도 전서 2:1-5

 

신앙고백 / 다같이

찬송 / 190 장 / 다같이

기도 / 회원중

성경봉독 / 고린도전서 2:1-5 / 다같이

말씀나눔 /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 인도자

 

우리가 이미 아시다시피 고린도는 지적인 수준이 높은 지역입니다 경제적인 수준이 높다 보니 자연히 학문과 문화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에는 철학과 수사학을 가르치는 유명한 곳이 많이 있어서 각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고린도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어떻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효과적이겠습니까? 논리적인 말과 그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지혜를 100% 활용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까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지역에서 지내며 복음을 전하는 동안에 예수 그리스도, 특히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고 고백을 합니다. 바울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할 때 설득력 있는 수사학이나 철학적인 논증 그리고 뛰어난 웅변술을 통해서 선포한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전하였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런 바울의 모습에 실망하였던 사람들 가운데는 “바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를 몸으로 대할 때에는 약하고 그의 말도 시원하지 않다”라고 그를 폄하하였습니다. 바울이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을 리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염두에 두었던 것은 수사학이나 철학 그리고 웅변술을 동원해서 복음을 전할 때 물론 복음이 전파되기도 하겠지만 사실 복음은 뒷전이 되고 인간 바울이 더 드러나게 되고 주목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자신은 철저하게 사라지고 오직 자신이 증거하는 예수님만이 부각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던 사람이 이렇게 걸으며 뛰게 된 것을 이상하게 여기던 사람들이 바로 이 일의 중심에 베드로와 요한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로 몰려듭니다.

바울은 4절과 5절에서 또한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복음을 증거하려고 했다고 말합니다. 4-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설득력 있는 말과 지혜로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면 도대체 무엇을 믿고 복음을 전했다는 말입니까? 오늘 본문을 보니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을 의지해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그것은 어떤 설득력 있는 말과 지혜보다도 더 놀랍게 역사하신다는 것을 바울은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것은 바울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가 바울의 과거를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바울은 철저한 바리새인이요 율법주의자였습니다. 이런 바울을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고 해도 말로서 그리고 지식이나 지혜로서 변화시켜서 예수님을 믿게 만든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사람의 설득력 있는 말이나 지혜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강권적인 역사하심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더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이 경험을 통해서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성령의 역사하심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어디에 가서 복음을 전하든지 사람의 방법이나 지식이나 지혜가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였고 그렇게 할 때 상상할 수 없었던 놀라운 열매를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바로 자신이 이렇게 경험한 것을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3절에서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행적을 보면 이런 고백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4장의 말씀을 보면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나면서부터 발을 쓰지 못 하고 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을 일으켜 걷게 합니다. 사도행전 19장을 보면 바울에게서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는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자나 귀신들린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떠나가고 악귀도 나가는 놀라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 이렇게 놀라운 능력을 행한 바울이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다” 고 고백을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바울은 엄청난 은사를 가진 사람이라고 자만하지 않고 자신을 통해서 나타난 능력은 하나님이 행하신 것이지 결코 자기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던 바울은 고린도후서 12:10절에서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라고 고백을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성령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일해야 합니다. 주님의 일을 할 때는 물론이고 내 육신과 관계 되는 일을 할 때도 성령님께서 주시는 능력과 지혜를 의지해서 일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 적용을 위한 나눔

  • 사역하다 보면 내 힘만 의지하며 일할때가 있습니다. 왜 그렇게 일하게 될까요? 그때의 어려움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능력으로 일할때와 내 힘만 의지하며 일 할 때 어떤 차이가 있나요?
  • 능력으로 일하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 / 인도자

헌금 / 191 장 / 다같이

봉헌기도 / 맡은이

주기도 / 다같이

 

※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은 찬송가 앞부분에 나와 있는 새번역 사도신경새번역 주기도문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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