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컬럼




[2023-01-29] 거울 속의 나, 사진 속의 나 - 박병권 목사
거울 속의 나, 사진 속의 나 얼마 전에 여권을 새로 만들기 위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여권에 사용할 사진의 규정은 꽤 까다로웠습니다. 고개가 삐뚤어져도 안 되고, 웃어도 안 되고, 머리카락이 이마를 가려도 안 됐습니다. 사진에 멋을 주기 위해서 살짝 돌려 앉아도 안 됐고, 사진의 배경은 흰색 외에는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뭔지 모르게 어색한 자세를 사진사가 몇 번 고쳐 주고 몇 장의 사진을 찍은 후에 그 중에서 제일 맘에 드는 것을 고르라고 하면서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인화하기 전에 모니터에서 먼저 보여준 사진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사진 속에는 평소에 내가 늘 보던 모습이 아닌 생각보다 훨씬 더 늙어 보이는 초로(初老) 한 남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진 속의 사람은 내가 분명한데 마치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낯선 모습이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통해서 보았던 내 모습은 분명히 이 정도로 늙은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때는 거울을 보고 나서 집사람에게 농담처럼 “이 정도면 잘 생겼지?”라고 말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집사람의 반응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이 정도로 늙었다고 생각을 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새로 찍은 여권 사진 속의 내 모습은 평소에 거울 속에서 보던 내 모습과 다르게 낯이 설 정도로 볼품없는 모습이었고 생각보다 늙은 모습이었습니다. 여권 사진의 모습은 거울 속에서 보던 내 모습하고만 달랐던 것은 아닙니다. 비교적 사진을 잘 찍지 않는 저도 집사람하고 여행을 하거나 특별한 장소에 가면 휴대전화에 내장되어 있는 사진기로 가끔씩 사진을 찍곤 하는데 여권 사진은 그렇게 휴대전화의 사진기로 찍은 사진과도 너무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거울을 통해서 매일 보는 나의 모습이나 휴대전화의 사진기로 찍은 나의 모습과 여권 사진 속의 내 모습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거울 속에 있는 나는 내가 취하고 있는 자세와 내가 짓고 있는 표정을 반영합니다.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도 좋은 경치나 배경 그리고 멋을 부린 듯 안 부린 듯 적당한 각도로 사진을 찍기 때문에 진짜 나의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배경 때문에 그리고 적절한 포즈 때문에 실제보다 더 괜찮아 보입니다. 그런데 여권 사진은 그렇지 않습니다. 배경도 없고 포즈도 일정해야 하기 때문에 나의 실체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실망스럽다고 하더라도 여권 사진의 모습이 진짜 나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 보는 것처럼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의 진정한 실체를 보지 못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나 자신의 실체를 분명하게 보게 될 때가 있는데 그것은 말씀의 거울 앞에 설 때입니다. 실망스럽더라도 말씀의 거울 앞에 서서 보게 되는 나의 모습이 진짜 나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통해서 나의 실체가 어떤지를 인식하고 인정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의 사람으로서의 모습일 것입니다. 나 자신의 왜곡된 시선에 속지 않고 말씀 속에서 나 자신의 실체를 발견하고 주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2023-01-22] 길 없는 길 - 박병권 목사
길 없는 길 “길 없는 길”이라는 말은 지금은 고인이 된 작가 최인호 선생의 소설 제목입니다. 사실 ‘길 없는 길’이라는 말은 논리적으로는 모순입니다. 길이 있으면 있는 것이고, 없으면 없는 것이지, “길 없는 길”이라는 말은 “없지만 있다”는 말처럼 존재할 수 없는 이상한 말입니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었던 작가는 이 소설에서, 종교적인 진리를 찾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진리를 찾는 길은 눈에는 보이지 않아서 없는 것 같지만 그러나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진리를 찾기 위해서 노력하는 구도자뿐만 아니라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도 따지고 보면 ‘길 없는 길’을 걷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나와 같은 시대에 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또 나보다 앞서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똑같은 인생을 살았던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의 인생은 길 없는 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길 없는 길’을 걸어갔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입니다. 애굽에서 노예처럼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인도를 따라서 가나안을 향해서 갑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서 갔던 곳은 그들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고 살아본 적이 없었던 광야였습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 아니 살 수도 없는 곳이어서 그런 낯설고 거친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가나안을 향해서 가기는 가지만 그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길이 없었고 말 그대로 ‘길이 없는 길’을 가는 두려움, 그리고 처음 겪는 일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그들을 사로잡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두려워 말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보여주시는데 그것은 바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는 더 이상 길이 없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인도 하심을 따라 가는 그곳이 곧 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음력으로 새해 첫 날인 설날이고 2023년 새해를 맞이한 우리는 이제 또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길을 걷게 됩니다. 광야와도 같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는 그리고 길도 없는 것 같은, 아니 길이 보이지 않는 이 세상을 이제 또 살아가야 합니다. 바로 이런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주님 안에 길이 있고 말씀 속에 길이 있다고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가는 것처럼 두렵고 힘들 때가 있다고 하더라도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신다고도 말씀하십니다. 길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길을 걸어 갈 수 있는 힘은 세상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얻게 됩니다. 우리 모두 이 사실을 기억하고 주님께 내 인생의 길을 맡기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023-01-15] 나 자신에게 내준 숙제 - 박병권 목사

목회자에게는 평생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있는데 바로 설교가 그것입니다. 다른 것은 뒤로 좀 미룰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생략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미룰 수도 없고 빼 먹을 수도 없는것이 설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설교원고를 작성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글쓰기와 연결됩니다. 은혜로운 설교를 위해서는 좋은 설교원고를 작성하는것이 꼭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하지만 또 그밖에 다른 책들을 읽거나 평소에 생활하면서 갖게 되었던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스물 아홉이라는 비교적 빠른 나이에 담임목회를 시작했던 저는 첫 목회지에서 <젊은 설교자의 자화상>이라는 제목으로 제가 책을 읽거나 생활하면서 느꼈던 것을 정리해서 꾸준히 주보에 실었습니다. 두번째 목회지에서는 영동기독교방송에서 <예배당 창문 너머 바라본 세상> 이라는 5분 컬럼을 꽤 여러 해 동안 진행하면서 역시 책을 읽거나 생활하면서 느꼈던 것을 글로 정리하고 그것을 방송을 통해서 성도들과 함께 나누곤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세번째 사역지이자 마지막 사역지가 될 것이 거의 확실한 성남교회에서 사역을 하면서 먼저 사역을 하던 곳에서 했던 것처럼 설교 외에 목회자가 갖고 있는 생각과 읽고있는 책에 대해서 그리고 생활하면서 느낀 단상들을 글로 남기고 그것을 성도들과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강단에서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로서의 모습만이 아닌 강단 아래서 한 사람의 신앙인이자 생활인으로 제가 어떤 것을 고민하고 있고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순간순간 경험하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글을 통해서 성도들과 함께 나누는 것도 좋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주보에 글을 실어도 읽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굳이 이런 것을 주보에까지 실을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더 많이 책을 읽어야 하고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데 사실 이것은 제가 저 자신에게 내준 숙제와도 같은 것입니다. 숙제를 나 자신만 알고 있으면 슬쩍 그냥 넘어가도 되지만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숙제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처럼 매 주일 주보에 글을 쓰겠다고 성도들에게 공포한 이상 이 숙제는 미룰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이 칼럼은 은퇴할 때까지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여러분에 대한 약속이자 나 자신에게 내준 숙제와 같은 것입니다. 좋은글, 유익한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쪼록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은혜를 나누는 글이 되길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0023-04-16] 은혜의 강이 흐르게 하라 - 박병권 목사

 

은혜의 강이 흐르게 하라

우리 교회의 성도들이 오늘 성지순례를 떠납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먼저 섬기던 교회에서 교회의 배려와 섬김으로 성지를 두 차례를 다녀왔습니다. 제일 처음에 성지순례를 갔을 때 인상 깊었던 것 중에 하나가 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 출애굽을 해서 광야에서 생활했던 것을 체험하기 위해서 광야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광야체험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 체험을 통해서 광야의 생활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단 하루도 견디기가 힘들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광야 생활이 힘든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람이 살기에는, 아니 사람뿐만 아니라 생명이 있는 것들이 살아가기에는 너무 열악하고 척박한 환경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하루도 살 수 없는 것이 광야에서의 생활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명이 있는 것이 살아가기에는 몹시 힘든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생명을 유지하는 식물들이 있는데 그들의 특징은 대부분 키가 작고 이파리가 작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가시가 날카로워서 조금 과장하면 가시가 송곳처럼 강하고 날카롭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수분의 증발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광야의 날씨에 적응한 결과였을 것입니다.

성지순례를 했을 때 보게 되었던 메마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날카로운 가시나무들을 떠올리면서 문득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이 풍부하고 기후가 온화한 지방에 있는 식물들은 이파리가 크고 가시가 별로 없지만 광야와 같이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이파리도 작고 가시고 매우 날카로운 것처럼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할 때는 이파리가 크고 울창해서 많은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들기도 하지만 우리 안에서 은혜가 메마르고 심령이 강퍅해지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뾰족한 가시들이 돋아 나와서 다른 사람을 찔러 고통스럽게 할 때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날카로운 가시가 너무나 많이 돋은 가시처럼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남을 찌르는 말과 행동 그리고 모습을 가지고 있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고 우리들의 심령이 메말라 있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47장 말씀을 보면“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은혜의 강물은 모든 생명이 있는 것을 살리는 힘이 있다고 말씀을 합니다. 오늘 하나님을 믿는 우리 모두의 마음 안에 이 은혜의 강이 흐르게 함으로 나도 살고 남도 살리며, 또한 남을 찌르는 가시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위로와 평안을 주는 시냇가에 심겨진 이파리가 무성한 큰 나무와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2023. 4. 16)

 
[0023-03-26] “바흐가 믿고 섬기던 하나님과 내가 믿는 하나님은 같은 분”   - 박병권 목사

 

 “바흐가 믿고 섬기던 하나님과 내가 믿는 하나님은 같은 분”

   

저는 해마다 사순절이나 고난주간이 되면 마치 어떤 의식을 치르듯이 듣는 음악이 있는데 흔히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마태수난곡>입니다.

<마태수난곡>은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관련된 내용을 소재로 만든 곡입니다. 수많은 종교 음악이 있지만 <마태수난곡>은 종교 음악의 최고봉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 작품성을 인정받는 곡인데 전곡이 무려 3시간에 이를 정도로 긴 곡이라서 정말 작정하고 듣지 않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듣기 어려운 곡입니다.

<마태수난곡>을 연주하고 음반으로 남긴 많은 연주자들이 있는데 저는 그 중에 마사아키 스즈키라는 일본 지휘자와 <바흐 콜레기움 재팬>이 연주한 음반을 애청합니다. 마사아키 스즈키는 평생 바흐의 음악만 전문으로 연주를 해 온 사람으로 지금은 바흐 음악의 최고 권위자로 인정을 받고 있지만 처음부터 그가 인정을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 동양인이 마사아키 스즈키가 바흐의 종교 음악을 연주한다고 했을 때 서구의 많은 평론가들은 과연 동양인이 바흐의 종교 음악을 잘 연주할 수 있을까? 하는 의혹이 담긴 시선으로 보기도 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비아냥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입장을 바꿔 놓고 보면 우리나라의 춘향가를 서구 사람들이 그 내용을 이해하고 노래를 할 수는 있지만 과연 그 감정을 잘 살릴 수 있을까 하는데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처럼 동양인이 바흐의 종교 음악을 연주하는데 대해서도 같은 의구심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구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에게 마사아키 스즈키는 “바흐가 믿고 섬겼던 하나님과 내가 믿는 하나님은 같은 분”이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인종이 다르고 문화적인 배경이 다르지만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에 대해서는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인종이 다르고 문화적인 배경이 다르다고 하더라고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마사아키 스즈키는 기독교인이 1%밖에 안 되는 일본에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는데 결국 마사아키 스즈키는 오늘날 바흐 음악의 세계적인 권위자가 되었고 그가 연주한 바흐의 음악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바흐가 믿고 섬겼던 하나님과 내가 믿는 하나님은 같은 분”이라는 마사아키 스즈키의 이 말은 저에게도 큰 교훈을 줍니다. 이 말을 “아브라함이나 다윗이 믿고 섬겼던 하나님과 내가 믿는 하나님은 같은 분”이라고 한다거나 “바울이 믿고 섬겼던 하나님과 내가 믿는 하나님은 같은 분”이라고 바꿔서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사아키 스즈키가 바흐와는 시대와 인종과 문화적인 배경은 달라도 한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종교 음악을 잘 이해하고 연주를 했는데, 오늘 나는 아브라함이나 다윗이 믿고 섬겼던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데 과연 나도 그렇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인도하심을 온전히 믿고 그분의 손에 나의 삶을 온전히 맡기고 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나와 같은 하나님을 믿고 섬겼던 바울이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죽는 것도 유익하다(빌1:21)”고 했던 바울처럼 주님을 위해서 받는 고난을 훈장처럼 여기고 죽음마저도 유익하게 여기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아브라함이 그리고 다윗과 바울 그리고 그 외에도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섬겼던 그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신데 나도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고 따르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사순절, 나의 믿음이 한 걸음 더 주님 앞으로 다가가기를 소원합니다. (2023.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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