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다시!
저는 지난해 11월부터 교회 가까운 곳에 있는 헬스장에서 개인지도(PT)를 받고 있습니다. 평소에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저로서는 모든 것이 생소하기만 했는데 그래도 몇 달 동안 지속하다 보니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요령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는데 제게 운동을 가르쳐 주는 트레이너는 일주일에 두 번으로는 부족하니까 레슨이 없는 날에도 와서 꼭 운동을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목회 스케줄이 있는 저로서는 일주일에 두 번 가는 것마저도 버거울 때가 있어서 그 이상 가서 운동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일주일에 두 번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많이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트레이너가 레슨이 없는 날에도 나와서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렇게 해야지 레슨 받은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자세를 유지할 수 있고 나중에 트레이너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 강조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어떤 운동을 반복적으로 하다가 자세가 흐트러졌다고 느낄 때는 무리해서 계속하지 말고 그 즉시로 운동을 멈추고 자세를 바로잡은 다음에 처음부터 제대로 된 자세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자세로 운동을 계속하게 되면 부상의 위험이 있기도 하고 마치 노동을 하는 것처럼 힘들기만 하지 제대로 운동 효과를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운동을 하러 갈 때 트레이너가 이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제가 운동을 하는 도중에 잠깐 쉬었다가 다시 하자는 말을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아, 지금 내 자세가 흐트러졌나보다”라고 생각하고 잠시 멈춰서 호흡을 가다듬고 자세에 신경을 써서 처음부터 다시 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운동을 하다 보면 어떤 자세는 비교적 잘 되는 반면에 어떤 자세는 유난히 어렵고 잘 안 되는 자세가 있어서 힘들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좌절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레이너의 지도를 따라서 꾸준히 하다 보니 자세가 교정되고 점점 더 좋아지는 것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렇게 운동을 하면서 트레이너가 강조해서 하는 말 대로 운동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아, 이건 꼭 운동을 하는 데만 적용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그대로 적용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운동이 몸에 완전히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일주일에 두 번 하는 것으로는 부족한 것처럼 일주일에 한 번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는 우리들이 세상에서 온전히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가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자세로 계속해서 운동을 하면 부상의 위험도 있고 힘들기만 한 것처럼 주님의 뜻이나 방법이 아닌 내 생각이나 내 방법대로 그리고 하나님과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닌 자기만족을 위한 열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기도 하고 교회와 성도에게 오히려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비교적 할 만한데 기도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경우도 있고, 이것과는 반대인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운동이든 신앙생활이든 좀 힘들고 익숙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꾸준히, 자주 그리고 올바른 모습과 자세로 하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 모두 이 원칙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그대로 실천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의 믿음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건강하게 훌쩍 자라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이런 믿음의 열심을 내게 허락해 주세요. (2026. 3. 29)
“내가 먼저 봄이 되어야지”
꽤 오래전에 휴가 기간에 대구에 잠시 들렀던 적이 있었습니다. 다녀온 지 오래됐고 아주 잠깐 들렀던 것이지만 지금도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대구시 동산동에 있는 “청라언덕”입니다.
청라언덕은 대구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던 선교사들이 머물렀던 곳인데 이곳에는 아직도 오래된 선교사 주택과 묘지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곳을 청라언덕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는 언덕 위에 있는 선교사 주택의 벽면이 푸른 담쟁이 덩쿨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실 “청라언덕”은 대구를 다녀오지 않았어도 아는 분들이 많은 곳인데 바로 이은상 선생이 가사를 쓰고 박태준 선생이 곡을 만든 <동무 생각>이라는 가곡을 통해서 널리 알려진 곳이기 때문입니다.
<동무 생각>이라는 가곡의 가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학창 시절에 배웠지만 아직도 봄이 되면 입속에서 맴도는 익숙한 이 노래의 가사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얼마 전 문득 이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봄의 교향악이란 도대체 뭘 말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아마도 봄이 되면 앞다퉈서 피는 다양한 꽃들을 여러 가지 다양한 악기가 서로 어우러져서 음악을 만드는 교향악에 비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제 청라언덕뿐만 아니라 말 그대로 교향악처럼 곳곳에서 다양한 봄꽃들이 피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또 한 가지 떠오른 것은 바로 이해인 시인의 <봄 일기>라는 시였습니다. 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봄이 일어서니 / 내 마음도 / 기쁘게 일어서야지 //
나도 어서 / 희망이 되어야지 //
누군가에게 다가가 / 봄이 되려면 / 내가 먼저 / 봄이 되어야지 //
그렇구나 / 그렇구나 //
마음이 흐르는 / 시냇물 소리
시인은 단순하게 봄에 앞다투어서 피어나는 꽃들을 감상만 하거나 그것을 보고 기뻐하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도 누군가에게 “봄”이 되고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서 봄이 되겠다는 다짐도 하고 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고, 죽었던 것 같았던 나무에서 새순이 돋고 꽃이 피는 것을 보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봄이 되고 희망이 되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이 참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흔히 봄은 사람의 마음속에 제일 먼저 오는 것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 말은 어쩌면 봄이 왔지만 누군가는 그 마음에 아직도 외롭고 쓸쓸하기 이를 데 없는 겨울과도 같은 것이 자리 잡고 있다는 말도 될 것입니다.
어느 틈엔가 봄 기운이 말라 죽었던 것 같은 가지에 들어가서 새순을 돋게 하고 꽃을 피게 하는 것처럼, 결코 녹을 것 같지 않던 계곡의 두터운 얼음을 녹이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보이지 않게 아직 겨울과도 같은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가서 그 마음을 녹이고 희망의 꽃을 피우게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먼저 봄이 되어야지”라고 노래했던 시인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봄이 되고 희망이 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이런 은혜의 사람이 되게 해 주옵소서 (2026. 3. 22)
“구경 미션(Gukyung Mission)”
우리나라에 최초의 선교사가 들어온 것은 1885년 4월 5일이었으니까 지금부터 141년 전이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된 것이 불과 100여 년 전 일인데 2024~2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개신교인 수는 약 800여만 명이라고 하니 선교 역사상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선교의 열매를 거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단기간에 기독교인의 수가 놀랄 만큼 늘어난 것뿐만 아니라 선교사를 파송하는 데도 적극적이어서 미국에 이어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2024년 기준으로 171개국에 2만1621명의 장기선교사와 516명의 단기선교사가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되던 초창기, 아직 서구의 문물이 낯설기만 했던 때에 서양에서 들어온 선교사들이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그 지역에 서양식으로 지은 집은 그 지역의 명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1904년에 샤프 선교사가 공주 하리에 땅을 사서 학교와 교회를 짓고 선교사 사택도 지었습니다. 공주 사람들은 언덕 위에 2층짜리 붉은 벽돌집들이 올라가는 것을 신기하게 여겼는데 사택이 완공된 후에 선교사가 사택을 공개하자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 왔습니다.
선교사의 집에는 공주 사람들이 생전 처음 보는 물건들로 가득했고 현관을 지나 응접실과 식당, 서재와 침실을 구경하면서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선교사 부부는 매일 찾아오는 구경꾼들에게 식탁에 앉아서 기도하고 서재에서 성경을 읽고 응접실에서 오르간을 치며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구경꾼들에게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생활이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공주뿐만 아니라 선교사들이 들어간 모든 지역에서 이런 현상이 벌어졌는데 선교사들은 이런 현상을 효과 있는 전도방법으로 활용했습니다. 선교사들은 마을로 내려가서 전도하는 것보다 오히려 마을 사람들을 선교부 안으로 끌어들여 복음을 접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선교사들은 이런 전도방법을 “구경 미션(Gukyung Misson)”이라고 부르면서 다른 선교사들에게 적극 권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초창기의 목사님들 중에서도 도대체 서양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선교사의 집에 구경하러 갔다가 그들의 생활 모습에 감동을 받아서 예수님을 믿고 목회자가 된 분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국 선교사들이 사역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구경 미션”은 여전히 유효하고 아주 효과적인 전도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그들과는 다른 삶을 사는 것을 보여줘서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이 바로 “구경 미션”이기 때문입니다.
굳이 집을 공개하고 사람들을 초대해서 우리들이 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언행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하는 마음으로 성도로서 구별된 모습을 보여주면 그것이 바로 “구경 미션”이 되어서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교회로 그리고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구경 미션”과는 정반대로 예수님을 믿는 성도의 삶이 구별되지 못해서 전도의 문을 가로막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과 삶이 정결하고도 은혜로워서 그것을 보는 이들이 감동을 받고 주님 앞으로 나오게 하는 “구경 미션”의 주인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믿음의 모습으로 생활 속의 선교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이런 믿음과 은혜를 내게 주세요.(2026. 3. 15)
“봄은 갈 지(之)자로 온다”
3월, 새학년 새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1월부터 새해가 시작되지만 왠지 새학년 새학기가 시작되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인 3월이 되어야 진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합니다.
지난 5일은 절기상 경칩이었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져서 초목에 싹이 트고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꿈틀거리면서 깨어나는 절기입니다. 경칩(驚蟄)이라는 말의 한자어가 “놀랄 경(警”)에 “숨을 칩(蟄”)이니 겨울잠을 자냐고 숨어 있던 동물들이 봄기운에 놀라서 깬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참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봄기운이 완연한 때, 아니 기온이 새벽에는 아직 영하를 기록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이제는 더 이상 겨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때 대관령에는 폭설이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좁은 나라지만 지역에 따라서 어딘가는 아직도 겨울이 그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눈이 내린 대관령뿐만 아니라 “아 이제 진짜 완연한 봄이구나”라고 말을 하려면 아직 몇 번의 꽃샘추위와 변덕스런 날씨를 거쳐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봄이 갈지(之)자로 온다”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봄이 갈 지자로 온다”는 말은 아마도 봄이 올 듯 말 듯 망설이기도 하고, 또 봄이 온 것 같다가 다시 겨울인 것 같이 느껴지는 날들이 몇 번 반복되어야지 진짜 봄이 오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봄이 아무리 망설이다가 온다고 하더라도 또 아무리 변덕을 부리면서 온다고 하더라도 그 누구도 봄이 온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조금 이르거나 느리게 올뿐 하나님이 정하신 자연의 법칙과 섭리를 따라서 봄이 오고야 만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고난이나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겨울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나 기도에 대한 응답을 봄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누구나 고통스럽고 힘든 긴 겨울이 빨리 지나고 봄이 오기를 기다릴 것입니다. 그런데 겨울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혹독한 반면 봄은 언제 올지 기약조차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 다윗의 삶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인생의 겨울은 끝날 것 같지 않고 혹독하기만 했습니다. 그의 인생은 끝이 없는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처럼 참담하고 고통스럽기만 했습니다. 끊임없이 다윗을 의심하는 사울이 그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그의 나라 안에서 도망을 다니다 못해서 그를 원수처럼 여기는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도망가서 미친 척하면서 겨우 목숨을 유지합니다.
그에게 있어서 인생의 겨울은 끝날 것 같지 않았고, 또 봄이 올 것 같다가도 저만치 도망가버리는 일들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의 인생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봄이 온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시편62:5절에서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다윗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조금 더딜지라도 지금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내 인생의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 이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26. 3. 8)
“먹방” 과잉의 시대
지금부터 10년 전쯤 일본 드라마인 <심야식당>을 꽤 재밌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본래 만화가 원작인 이 드라마의 제목은 <심야식당>이지만 내용은 음식이나 먹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식당 이름처럼 밤 12시에 문을 여는 작은 식당을 찾는 다양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마스터’라고 불리는 식당 주인은 말을 아끼는 인물로 손님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그들이 원하는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줍니다. 이 식당도 여느 식당처럼 단골 손님들이 꽤 있는데 그중에는 직장에 다니거나 주변에서 장사를 하는 평범한 사람들도 있지만 독특하게는 조직폭력배의 중간간부나 게이바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지금은 한물간 여자 가수도 있습니다.
<심야식당>은 이런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그들이 겪고 있는 삶의 애환을 보여주는데 이 작은 식당은 이렇게 삶의 속도와 무게에 지친 사람들에게 쉬어갈 공간을 만들어 줍니다.
다양한 삶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와서 늘어놓는 이야기들 하나하나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어떤 이야기는 웃기고, 어떤 이야기는 슬프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꼭 그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것 때문에 이 드라마를 시청한 많은 사람들이 정서적 공감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음식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프로그램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음식이나 먹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에 얽힌 이야기가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TV를 보면 단순하게 음식과 관련된 프로그램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요리사들이 나와서 경연을 하는 프로그램도 있고, 각 방송국마다 유명인들을 앞세워서 각 지역의 맛집들을 찾아다니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요리나 이른바 “먹방”으로 불리는 음식을 먹는 게 유일한 주제인 프로그램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른바 식욕을 자극하고 조장하는 “먹방” 과잉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방송의 영향 때문인지 먹는 것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는 저도 어쩌다가 이런 프로그램들을 볼 때면 “언젠가 저기 가게 되면 저 식당에서 꼭 먹어 봐야겠다”라고 하든지, 아니면 “내일은 나도 저 음식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게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저 말고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지 실제로 방송에 소개된 집에 가서 음식을 먹으려면 한 시간 정도 기다리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경우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최근에 성행하는 이른바 “먹방”들을 보면서 우리가 이렇게 먹는 것에 관심이 많고 또 열심히 찾아다니는 것만큼 과연 영적인 것에 대해서도 이런 관심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이 시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인 지금부터 2700여 년 전, 아모스 선지자가 활동한 할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모스 선자를 통해서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암8:11)”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먹을 것이 차고 넘쳐서 맛 있는 것만 골라 먹어도 다 먹을 수 없는 시대, 맛집만 골라 다녀도 다 다닐 수 없는 이런 풍요로운 시대에 정작 우리의 영혼은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메말라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고 주님의 은혜를 더 많이 그리고 더 간절하게 구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이런 믿음을 내게 허락해 주세요. (2026. 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