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노안(老眼)’입니다.
노안의 특징은 가까이 있는 것은 잘 안 보이고 멀리 있는 것은 잘 보이는 원시가 된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신문도 더 멀리 떨어져서 보고, 바늘귀를 꿸 때도 두 팔을 쭉 뻗고 멀리서 꿰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이렇게 눈이 나빠지는 것을 불편해 하고 또 어떤 이는 우울해 하기 까지 합니다.
그런데 오세영이라는 시인은 ‘원시(遠視)’라는 그의 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불편하게 생각하는 노안에 대해서
오히려 “늙는다는 것은 멀리 바라볼 줄 안다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멀리 있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시인 자신이 육신의 노안을 겪으면서 시인의 감성으로 늙는다는 것은 더 멀리 있는 것을 내다 볼 수 있는 지혜가 생기는 것이라고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세영이라는 분의 원시(遠視)라는 시를 보다가 문득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근시(近視)가 아닌 원시(遠視)가 돼서
멀리까지 내다보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나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바로 앞의 것만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장에 닥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당장 필요한 것들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그리고 당장 내게 이익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처럼 바로 앞의 문제에 그 눈과 마음을 빼앗겨서 당장 눈앞에 있는 일에만 집착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과 인도하심을 믿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원시, 즉 멀리 있는 것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믿음이 없어서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서 멀리 있는 것을 바라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 인생이 불행으로 끝나 버리게 되었던 것을 알게 됩니다.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 자기 눈앞에 있던 값진 보물에 마음을 빼앗겼던 아간이라는 사람이 그랬고,
은혜를 받아서 자기들의 가진 것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다짐을 했으나 막상 돈을 눈앞에 두고서는 당장의 욕심에 눈이 멀어서
거짓말을 하다가 비극적인 죽음을 당했던 사도행전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당장 눈앞에 있는 것에 연연해 하지 않고 믿음의 눈을 가지고 멀리까지 내다보았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은혜를 누렸을 뿐 아니라 설령 그렇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결국에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았다는 사실을 히브리서 11장에서는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혹시 나는 예수님을 믿은 지 오래되었으면서도 아직도 멀리 있는 것을 내다보지 못하고 당장 눈앞에 있는 것만을 바라보고
그것에 집착하고 있는 영적인 근시는 아닌지를 생각해 봅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가까이 있는 것보다 멀리 있는 것이 더 잘 보이는 원시(遠視)가 되는 것처럼
오늘 우리의 영적인 눈도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더 멀리까지 내다봄으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크신 섭리와 계획
그리고 하나님이 예비하고 계시는 은혜와 축복을 발견할 수 있는 나의 삶이 되길 소원합니다.
목회자에게는 평생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있는데 바로 설교가 그것입니다. 다른 것은 뒤로 좀 미룰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생략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미룰 수도 없고 빼 먹을 수도 없는것이 설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설교원고를 작성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글쓰기와 연결됩니다. 은혜로운 설교를 위해서는 좋은 설교원고를 작성하는것이 꼭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하지만 또 그밖에 다른 책들을 읽거나 평소에 생활하면서 갖게 되었던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스물 아홉이라는 비교적 빠른 나이에 담임목회를 시작했던 저는 첫 목회지에서 <젊은 설교자의 자화상>이라는 제목으로 제가 책을 읽거나 생활하면서 느꼈던 것을 정리해서 꾸준히 주보에 실었습니다. 두번째 목회지에서는 영동기독교방송에서 <예배당 창문 너머 바라본 세상> 이라는 5분 컬럼을 꽤 여러 해 동안 진행하면서 역시 책을 읽거나 생활하면서 느꼈던 것을 글로 정리하고 그것을 방송을 통해서 성도들과 함께 나누곤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세번째 사역지이자 마지막 사역지가 될 것이 거의 확실한 성남교회에서 사역을 하면서 먼저 사역을 하던 곳에서 했던 것처럼 설교 외에 목회자가 갖고 있는 생각과 읽고있는 책에 대해서 그리고 생활하면서 느낀 단상들을 글로 남기고 그것을 성도들과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강단에서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로서의 모습만이 아닌 강단 아래서 한 사람의 신앙인이자 생활인으로 제가 어떤 것을 고민하고 있고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순간순간 경험하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글을 통해서 성도들과 함께 나누는 것도 좋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주보에 글을 실어도 읽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굳이 이런 것을 주보에까지 실을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더 많이 책을 읽어야 하고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데 사실 이것은 제가 저 자신에게 내준 숙제와도 같은 것입니다. 숙제를 나 자신만 알고 있으면 슬쩍 그냥 넘어가도 되지만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숙제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처럼 매 주일 주보에 글을 쓰겠다고 성도들에게 공포한 이상 이 숙제는 미룰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이 칼럼은 은퇴할 때까지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여러분에 대한 약속이자 나 자신에게 내준 숙제와 같은 것입니다. 좋은글, 유익한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쪼록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은혜를 나누는 글이 되길 기대하고 소망합니다.